출애굽기 4장 24~31절 묵상 “ 하나님의 습격사건 ”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야훼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1. 오늘 묵상 말씀
출애굽기 4:24-31
24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야훼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25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26 야훼께서 그를 놓아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
27 야훼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광야에 가서 모세를 맞으라 하시매 그가 가서 하나님의 산에서 모세를 만나 그에게 입맞추니
28 모세가 야훼께서 자기에게 분부하여 보내신 모든 말씀과 야훼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이적을 아론에게 알리니라
29 모세와 아론이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를 모으고
30 아론이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그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31 백성이 믿으며 야훼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2. 묵상내용
1) 피남편
오늘 말씀을 보니 첫 출발이 순탄치 않습니다.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오르는데 그 여정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십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죽이려 한다는 동사는 구약학자 프레다임이란 분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노력하신다로 번역을 하십니다. 동사미완료형으로 그 동작이 계속되어지고 안끝남을 의미합니다. 모세에게 반응할 시간을 의도적으로 주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계속 죽일 듯 살 듯 하셨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한 편으로는 살 길을 찾는 기회를 주심을 의미합니다.
모세가 목이 졸렸는지 숨이 막혔는지 어떤 상태인지 자세히 서술하고 있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이 위기에 십보라가 나타나서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즉시 아들의 할례를 시행하여 모세의 발에 베어진 포피를 가져다 놓고 피남편이라고 말함으로 하나님께서 물러서십니다. 이 사건은 훗날 출애굽 당시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바로와 애굽의 장자들은 죽음의 심판을 받고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하나님의 죽음의 사자가 넘어가는 것을 미리 계시하시는 예언적 사건으로 해석을 합니다.
하나님의 습격사건은 성경에 또 나옵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씨름하다가 환도뼈가 부러진 사건입니다. 야곱이 형을 물질로 마음을 녹여보려는 아주 인간적인 방식으로 다가갈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모세는 야곱처럼 적극적인 자세도 아니고 그냥 우울하고 멍한 상태로,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하나님께 습격을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도대체 내게 허락된 상황이 이해가 안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체험입니다. 살면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나를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띄엄띄엄 아는 사람입니다. 모르면서 잘 안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한 길 물속을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르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마음을 어찌 알겠습니까? 그분이 계시하셔야 겨우 알 수 있는게 우리 인간입니다.
안다는 것은 지식만이 아니라 가슴으로 인격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알수록 신뢰하게 됩니다. 남에게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고 내가 직접 체험하고 만나고 겪어가며 알아가는 것이 아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면 불안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알게 되면 평안할 수 있습니다. 알수록 신뢰하게 됩니다. 알게 되면 오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야 할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는 분이시고 완전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분노는 인간편에 잘못이 있다는 게 됩니다. 그리고 사명자는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죽일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른 손에 붙들고 지키시고 책임지시니까요. 그런 하나님께서 이처럼 분노하시는 일에는 그 사명에 방해가 되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 하시는 이유
오늘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시는 이유는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아서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는데 그 언약의 싸인을 생식기의 끝에 포피를 베어내는 방법으로 하셨고 그것을 할례라고 합니다. 아마도 십보라는 모세를 통하여 할례의 중요성을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디안에서는 그러한 전통이 익숙하지 않았고 지금처럼 마취해서 수술하는 의료기술이 발달된 시대도 아닌 석기시대에 무딘 돌칼로 뜯어내야 하는 것에 위험할 수도 있으니 행하지 않았을 겁니다.
당시의 십보라와 모세는 그 중요성을 몰랐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이러시는지 무척 당황했을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당시에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지만 훗날 바로의 완악함을 보며 그 완악함의 극치에서 바로와 애굽이 심판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구원하신 사건을 통하여 이 사건도 하나님의 끝나지 않는 동작의 연속선상에서 일어난 구원의 사건임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창세기 17장에 나오는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약속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99세 된 아브라함 앞에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어 자손이 번창하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대신, 후손은 대대로 할례를 행해야 한다는 “할례언약"을 맺습니다. 14절에 보면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다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것을 안하고 간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선지자의 대표로 계약한 계약 당사자, 계약 갱신자인데 싸인을 안함으로 구원을 일으킬 수 없으니 죽이려 하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갈 때 가더라도 싸인을 하고 가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싸인을 왜 생식기 끝에 하신 걸까요? 일상속에서 화장실을 가거나 몸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싸인, 언약이 생각이 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네 몸에서 나오는 모든 후손은 언약의 후손이라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너의 자손은 너희 힘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자손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언약갱신을 해야 하는 모세의 실수 때문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의 몸에 사는 못 된 벌레가 대충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지금 모세가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는 중요한 일에 언약을 생각하지 못하고 대충. 멍하게 있다가 일어난 사건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대충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일을 지으시고 성취하시는 완전하신 분입니다. 모세의 연약함을 아시고 아론을 통하여 이루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가 소명을 받고 나아갈 때 가족이나 자녀들에겐 많은 것을 허용합니다. 공부해야 하니까, 일해야 하니까, 바쁘니까, 아직은 믿음이 연약하니까,,,등등 이유는 많습니다. 하지만 구원의 때가 급박하게 이르기 전에 예수님의 언약의 피를 바르는 일에는 심각성을 깨닫고 순종해야 합니다. 몸은 세상의 부모로부터 태어났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의 약속인 할례를 주셨지만 오늘날에는 이렇게 몸을 상하게 하는 할례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의 할례는 빌립보서 3장 2절에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하는 말씀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곧 성령세례가 이 시대의 할례입니다.
3) 하나님의 일을 할 자격 준비
모세는 다 준비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의 일을 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 채 하늘에 속한 일을 하려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인간의 손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면 죽음입니다. 거룩하지 못한 것이 거룩함 앞에 설 때, 하나님은 돌격하십니다. 자기 아들에게도 할례를 행하지 않고 장차 일어날 출애굽의 역사가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으로 행해지고 자신은 단지 도구로 사용된다는 그 기본적인 깨달음이 없이 애굽으로 가려고 했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성도 안에서,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십니다. 힘들고 어렵습니까? 하는 일이 잘 안되십니까? 고통과 눈물 가운데 있습니까? 여러분이 겪는 모든 힘든 고통 뒤에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게 하도록 여러분을 십자가 아래로 이끄는 손길이 있기 때문임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모세를 죽이려고 했듯이 여러분을 자꾸 십자가 아래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그 분의 지팡이가 여러분을 칠 때 마다 결국에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라는 것을 아시고 용기를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3. 기도
소명의 부름 앞에서 나와 함께 하는 가족들과 지체들을 돌아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인간의 생각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도록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도 제목
소명의 공동체를 위해 더 기도하며 인간의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나아가는 교회와 지체들이 되도록!
4. 요약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길에서 위기를 겪었지만 십보라가 아들을 할례함으로 위기를 넘기고 다시 길을 갑니다. 부르신 소명에 다시 새롭게 무장하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일하심 앞에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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