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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s의 설교. Q.T.

마태복음 23장 25~32절 말씀 묵상 “ 좀 더 가까이 오세요. 정상입니다! ”

by phos 2022.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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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3장 25~32절 말씀 묵상 “ 좀 더 가까이 오세요. 정상입니다! ”

 

 

1. 오늘 묵상 말씀

 

마태복음 23:25~32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2. 내용 요약과 묵상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회칠한 무덤으로 비유하십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한 회칠한 무덤처럼, 그들의 마음속에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합니다. 먼저 내면을 깨끗이 해야 외면도 깨끗해집니다.

 

 

1)  회칠한 무덤

코비드19로 인해 우리의 삶은 전에 비하면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어디를 들어가든 우리는 우리의 상태를 체크하는 기계 앞에 서서 얼굴을 가까이  대어야 했습니다. 한 번에 ‘정상입니다.’ 하는 멘트가 나오면 좋은데 보통은 인식이 잘 안돼서 좀 더 가까이 오라는 말을 듣습니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으면 좀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얼굴인식체온측정계(사진출-국민일보)

 

 

‘정상입니다!’ 이 한 마디면 우리는 무사통과 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이 멘트를 들으며 우리의 체온을 감지하여 체크하듯 나의 영적인 상태도 체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나는 열심히 하는데 하나님께서 정상이 아니다.. 하시면 정말 큰 일이니까요. 하나님께서 가까이 와봐라 하시고 정상이다! 해야 할렐루야가 터질 수가 있습니다. ‘좀 더 가까이 오세요. 아..정상이 아닙니다.’ 한다면 정말 슬플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바리새인들은 역시 또 예수님께 혼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회칠한 무덤'과 같다는 모욕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부정한 것을 혐오하는 사람들입니다. 부정한 것의 가장 극치가 죽은 시신인데 그 시신을 담은 무덤이라고 말씀하시니 정말 충격입니다.

 

 

회칠한 무덤 (사진 출-가스펠 투데이)

 

 

무덤에 회칠을 하는 이유는 민수기 19:11에 '주검에 몸이 닿으면 이레 동안 부정하다"는 말씀에 의거합니다. 성서 시대의 가난한 자들은 땅을 대충 파서 시체를 묻었는데,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유대 산지는 흙을 조금만 파도 석회암 바위가 나오기 때문에 땅을 깊게 팔 수 없었습니다.

 

이들의 무덤은 아무런 표시가 없는 ‘평토장 한 무덤’이었고 깊이 파서 묻지 않았기 때문에 때로 뼈들이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했습니다. 성전 파견단은 순례자들이 다니는 길에서 평토장 한 무덤을 찾아 회칠로 표시하는 일을 했고 순례자들은 이 표시를 보고 길을 우회해서 갔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시체 접촉으로 인한 부정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회칠한다는 사전적인 의미는 벽이나 담장 등을 석회, 도료 등으로 희게 칠하거나 일광으로 희게하다, 표백하다 라는 의미로 결점을 감추다. 겉을 꾸미다의 의미를 지닙니다. (회칠한 무덤 사진) 빛이 비치면 회칠한 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풍광이 멋지지만 무덤 속엔 죽은 시신이 썩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2)  바리새인

 

하나님의 뜻에 열심하다고, 스스로 이름도 바리새인으로 붙인 이들이 예수님이 보시기에 마음속엔 탐욕이 가득하고 보이기 위한 것들로 자신을 치장하며 과장하기에 이러한 말을 들은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겉모습의 실체를 감추는 것이므로 ‘위선’에 가깝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당시 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거침없이 그들을 비난하실 때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랐을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분리된 자’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페루쉼’에서 나온 말로 율법에서 깨끗하지 않다고 하는 것들로부터 분리하려는 태도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 말은 BC 130년경 마카비 시대에 최초로 등장했는데 바벨론 포로기 동안에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의 결과로 일반 유대인들과 회당 중심으로 펼쳐졌던 움직임이었습니다. 종교적인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로마에 대해 무력 봉기를 한 행동주의자들입니다. 민족을 위해 목숨을 거는 바리새인들은 존경의 대상이 되었지만 예수님과 자주 갈등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율법을 열심히 지키는 것을 책망하신 게 아니라 율법의 기본 정신인 은혜와 사랑을 잃어버린 것을 비난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표리 부동한 행위를 언급하며 핵심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는데 누구보다도 율법을 열심히 지키려고 노력했던 바리새인들은 너무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한 나머지, 그들의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하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그러한 외식을 경고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게 외적으로만 강조된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회칠한 무덤은 외식의 상징입니다. 외식이란 밖에서 식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겉과 속이 다른 것을 말합니다. 즉 체면을 차려서 겉을 꾸미는 것입니다.

 

외식이란 단어로 쓰인 헬라어 ‘휘포크리테스’라는 말은 “가면을 쓴다”라는 의미입니다. 연극 배우가 무대 위에서 가면을 쓰고 연극하는 것에서 유래된 이미지입니다. 예수님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연극배우로 정의하신 것은 그들의 의도가 불순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쩨바’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색깔, 또는 염색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즉 살이나 물건의 상태가 더 좋아 보이도록 색을 입힌다는 의미입니다. 과일이나 먹는 것에 외형을 좋게 보이려고 사람들 눈을 속여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뉴스가 간간이 보입니다.

 

히브리어 ’쩨바‘란 단어가 사람에게 사용되면 ”외식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사람들이 외식을 하게 되는 것은 자기 의를 드러냄으로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의 경우엔 기도나 구제나 헌금 생활 등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만약 이런 신앙 행위가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즉 외식함으로 하게 된다면 하늘의 상급이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 중심에 위선과 불법과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종교적 행위는 가장 우아하고 세련되게 행했기에 이런 책망을 받았습니다. 애초부터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통회했다면, 통회하는 자를 멸시치 않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티를 지적함으로 자신의 추함을 위장하는 데만 열심을 다하니 하나님의 눈에는 그들의 죄가 더 큰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회칠한 무덤'은 무덤 자체를 비난하신 것이 아닙니다. 외식, 거짓으로 진실을 덮는 행위를 하는 자, 입만 살아있는 자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말의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자'나 '식언하기를 밥 먹듯 하는 자'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고 그보다 더 험한 말을 듣는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하얗게 회칠한 무덤은 빛을 받으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무덤 안은 죽은 사람의 살과 뼈가 썩어가는 심히 부패한 곳입니다. 결국 속에는 시체와 같은 부패함이 있지만 겉으로는 경건하고 의로운 체하는 바리새인들이 이처럼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악한 존재란 뜻이 예수님의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평토장한 무덤이 무덤 속의 은폐를 강조한 비유라면 회칠한 무덤은 겉치장을 강조한 비유입니다. 내면보다 겉모습에 치장을 한 이유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가운데 모든 것을 보고 계시며 사람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에 집중하십니다.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먼저 내면을 깨끗이 해야 외면의 깨끗함도 의미가 있습니다.

 

 

3) 선지자들에 대한 변명

 

선지자들에 대한 그들의 변명에 예수님은 너희 분량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참 선지자들은 하나같이 비운의 운명을 살았고 조상들은 선지자들을 거역하며 선지자의 말을 불편해했습니다. 귀를 막고 듣지 않았으며 모욕하고 때리고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 죽였습니다.

 

물론 그때도 잘 나간 선지자들은 왕의 비위를 잘 맞추며 호강했습니다. 나라의 여러 감투를 쓰고 명예를 누렸고 귀족들에게도 명망을 얻었습니다. 재산을 모으는데도 훈계와 경고보다는 지지하며 귀족들의 호의를 누렸습니다. 잘 나가는 선지자들은 고소득에 큰 집 짓고 호가호위하며 자식에게도 부와 명예를 물려줬고 백성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백성들이 신앙을 배반하여 서로 악을 행하여도 늘 복과 안전을 빌어주었습니다. 그 대가로 인기를 얻었고 장수하며 잘 살았습니다. 또 많은 백성들이 잘 나가는 선지자들이 말하는 대로 되려고 갈망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왕의 심기를 괴롭히고 세력자들의 죄를 사정없이 규탄하고 백성들 듣기에 불편한 말을 한 선지자들은 불우하고 아무에게도 호응을 얻지 못하고 쓸쓸히 죽었습니다. 죽어서도 화려한 비석은 고사하고 이 무덤이 누구인지 모를 정도로 외면당했습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조상들이 박대한 참 선지자들의 무덤을 꾸밉니다. 참으로 가식덩어리들입니다. 그들의 속내는 자신들이 이렇게 참 선지자들을 존중하고 기념한다는 제스처인데 이 제스처가 예수님을 분노하게 한 것입니다. 선지자들을 존중하면 그들의 말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자신들이 먼저 정의와 자비와 믿음을 실천하여 억울한 백성들이 없도록 하고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실천은 안중에 없이 고작 무덤이나 꾸미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우리는 때로 속에 담고 있는 것이 밖으로 보이는 것에 당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만큼 보여지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되고 포장에 신경을 쓰고 삽니다. 겉은 그리스도의 옷을 입었지만 속은 그리스도에 반하는 것을 쫓습니다. 겉모양이 하찮아 보이면 박대합니다.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을 그렇게 박대했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린다 말하면서 정작 겸손으로 오신 그분을 겸손으로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우리도 '나는 너보다 낫다'는 생각에 판단하고, 규정짓고, 상처를 만들지만 자신의 모습을 먼저 돌아볼 수 있는 겸손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옛날 설날이 되면 검소함과 백성의 가난을 기억하며 왕과 신하들에게 무명의 옷감을 진상하는 예식이 있었는데 아무도 무명으로 옷을 해 입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생긴 말이 표리부동이란 말인데 표리는 겉과 속을 뜻합니다. 바리새인처럼 표리부동하지 말라고 본문은 교훈합니다.

 

우리가 외식을 극복하려면 자기 안에 있는 더러움과 죄를 보고 매일 말씀과 기도로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세상의 축복보다 영혼의 정결에 최우선적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또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초연하고 오직 하나님의 인정을 구해야 합니다. 믿음이 깊은 자들이나 오래된 자들도 언제든지 외식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참된 복음이나 경건은 외식이 아닙니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진실합니다. 위선적이고 외식적인 종교성은 나도 죽이고 다른 사람도 죽일 수 있습니다. 우린 말씀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늘 겸손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외식의 누룩을 조심함으로 우리 영혼이 병들거나 망하지 않고 항상 영적으로 건강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3.  기도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의식하기 보다는 모든 것을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주님 앞에서 겉과 속이 같은 진실한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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